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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눈물이 나면서도 힘이 되요"울림3호
  글쓴이 인권영화제 글쓴날 2006-04-24 00:52:23 조회 1614

▒ 2006년 4월 22일 52번째 인권영화제 뉴스레터 울림 name="generator" content="Namo WebEditor"> http-equiv="content-type" content="text/html; charset=utf-8">

▒ 2006년 4월 21일 52번째 인권영화제 뉴스레터 울림

2006년 울림 3호 차례

1. [기획] 방글라데시 소수민족 줌마족의 보이샤비 명절 취재

 2. [기획] 인권영화제를 거쳐간 사람들의 회고작 릴레이 인터뷰 ①②

 3. [영화제] 인권영화제 10주년 회고작 상영작 확정

 4. [기획] 이웃 영화제 스케치 ② 장애인권영화제

 5. [상영작] 리뷰 우리들은 정의파다

방글라데시 소수민족 줌마족의 보이샤비 명절 취재

우리는 방글라데시의 아름다운 소수민족 줌마 사람들 입니다.

 일요일 오전. 부활절 달걀을 쥐고 오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석가탄신일을 한달 여 앞두고 거리에는 색색의 연등도 걸렸다. 주말이었지만 종로 거리는 비교적 한산했다. 따뜻했던 봄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진 탓이다.

 이 날은 줌마인들의 고유명절인 ‘보이사비’날 이기도 했다. 보이사비는 줌마인들이 1년에 한 번 가족, 이웃들과 함께 음식을 나눠먹고 술을 마시며 줌마의 전통 음악과 춤을 즐기는 날이다. 젊은 여성들이 어르신들의 목욕을 도와드리고 복을 받아오는 풍습도 있다고 한다. 보이사비 첫날 새벽에는 온 집안을 꽃으로 장식하는 것으로 축제가 시작되는데 강가에서 꽃과 초를 띄우며 소원을 빌기도 한다고.

 하지만 이날 한국에 거주하는 줌마인들은 음악과 춤을 즐기는 대신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줌마인 네트워크 한국지부 사무국장 로넬 차크마 나니(37) 씨는 이날 방글라데시 정부에 대하여, 치타공 산악 지대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의 철수와 줌마인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사태 등 인권 침해 사건들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치타공 지역에 대한 줌마인들의 자치권 보장 등의 요구사항을 낭독했다. 로넬 사무국장은, 한국이 국제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원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 했다며 한국정부와 시민들이 소수민족인 줌마인들의 인권상황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했다.

 탑골공원 앞에서의 시위와 청계천까지의 거리행진까지 모두 마친 후, 줌마인 분들이 준비해 오신 간단한 음식을 나눠 먹었다. 강가에 앉아 꽃과 초를 띄우지는 못하지만 언젠가는 되돌아올 희망을 청계천에 대신 실어 보내며 연등불 같은 색색의 종이꽃으로 희망의 집을 장식했다. 치타공 힐트랙에도 따뜻한 희망의 봄이 찾아와서 집안가득 꽃으로 채울 수 있게 될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소망하며.

<치타공 힐트랙에 어떤 일이?>

 줌마인들은 방글라데시 동남쪽 치타공 산악지대(CHT)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이다. 이 지역에는 13개 민족으로 구성된 약 60만 명의 줌마인들이 자신들의 언어와 고유의 문화적 전통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방글라데시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이슬람교를 믿는 벵갈리 인들은 줌마인들과 언어, 종교 등 모든 면에서 뚜렷한 문화적 차이를 보인다. 71년 방글라데시(당시 동파키스탄) 독립전쟁 당시 다수 벵갈인들과 함께 전쟁에 참가했던 줌마인들은 자치권을 보장받기를 원했지만 방글라데시 정부는 오히려 벵갈인들을 줌마인들의 터전인 CHT로 이주시키기 시작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줌마인들을 향해 벵갈리인으로 동화될 것을 강요하며 이들의 자치권 요구를 묵살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군대와 벵갈리 정착민들의 폭력과 차별에 저항하며 방글라데시 정부를 상대로 자치권을 얻기 위한 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수많은 줌마인들이 외국으로 도피, 망명생활을 하게 되었다. 계속되던 중앙정부의 탄압으로 인한 분쟁상황이 97년 평화조약이 체결됨으로써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재까지도 정부와 군대의 탄압은 계속되고 있으며, 지난 4?! ? 3일에도 카그라차리 지역의 줌마 마을에서 벵갈리 정착민들에 의한 공격이 발생해 50여 명이 부상당하고 4명의 줌마 여성들이 집단강간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15명의 줌마인들 중 13명은 지난해 한국 정부로부터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은 상태다. 이들은 경기도 김포에 <줌마민족네트워크 한국지부(JPNK)>를 결성하여 방글라데시 정부의 소수민족 박해를 규탄하고 인권과 자치권을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획] 인권영화제를 거쳐간 사람들의 회고작 릴레이 인터뷰 ①②

 

인권운동사랑방 김정아 상임 활동가의 추천작 - 아나의 아이들 (김정아 씨는 96년 1회 인권영화제부터 지난 10년 동안 인권영화제 기획자로 활동해왔습니다.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이며, 10회 인권영화제 고문! 및 ‘올해의 인권영화상’ 심사위원입니다.)

 

 기자가 쓴 리뷰

 로시피나 갈릴리 출신 유대인이며 이스라엘인인 아나는 팔레스타인 남자와 결혼 해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운동을 벌인다. 스웨덴 의회로부터 ‘대안 노벨상’을 수상하기도 한 아나는 상금으로 받은 5만 달러로 팔레스타인 예닌지역 난민촌 중심에 극장을 지어, 연극인 출신 아들(감독)과 함께 난민촌 아이들에게 그림과 연극을 가르친다. 이스라엘 군대의 포격으로 하루아침에 집을 잃은 아이들은 무너진 집더미에 앉아 분노나 슬픔의 감정을 표출하는 일 조차 잃어버린 채 그저 멍한 표정이다. 진짜 비극은, 슬픔으로든 분노로든 인간이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여유조차 잃어버린 데서 온다.

 아나는 난민촌의 아이들에게 그림이나 연극을 통해서 응어리진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라고 가르친다. 폭격과 계속되는 죽음의 행렬 속에서 표정을 잃어버렸던 아이들은 연극을 통해 자신들의 감정을 뒤돌아본다. 그들은 말한다. 무대에 서면 꼭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돌을 던지는 기분이라고. 연극을 통해 사람들에게 나의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내가 삶을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는지.

 카메라는 연극학교의 아이들이 10여 년 후 자살테러나 총격전으로 죽은 이후의 삶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면서 난민촌 아이들의 전사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그들의 생전의 삶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팔레스타인의 로미오가 되고 싶다던 아시라프는 총격전으로 사망하고, 연극학교의 코메디언이라고 불릴 만큼 유쾌한 아이였던 요제프는 자신의 품에서 죽어간 소녀에 대한 충격으로 인해 자살테러를 감행하며, 끝까지 저항하다 이스라엘군에 사살당한 알리까지. 어쩌면 이들은 어린시절 연극학교의 무대위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다운 표정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 그저 자신들의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의 무대위에서 벌어지는 비참한 삶의 모습들에 대해 사람들이 보아주고 공감해 주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삶을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는지, 왜 우리가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l! t;span style="font-family:바탕; font-size:9pt; color:black; letter-spacing:0pt; text-align:justify; line-height:16pt;">

 

추천의 변

 

 아나의 아이들은 네덜란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본 영화인데 지금까지 본 영화 중에 가장 힘이 있는 영화였다.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인간 존엄성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인권 영화제의 미덕이라고 하면 바로 그런 것 아닌가. 자신에 대해 반성하게 하고 또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깨우칠 수 있다는 것. 인권에 대한 각성, 그 존엄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영화는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그것을 나타낼 수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들도 영화로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알려지지 못한 부분이 많다. 분쟁이 종식되고 있지 않고 이스라엘의 무력침공 보다는 팔레스타인사람들의 저항이 ‘테러’라고 명명되어 부각되고 있는 실정인데 그 ‘자살테러’라는 것은 맥락을 지운 말일 수밖에 없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비참한 삶의 현실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이 영화는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눈물이 나면서도 힘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현실에 대해 잊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만든다.

 

②이진영 활동가의 추천작 - 칠레 전투

(이진영 씨는 5회 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로 시작해서 2003년부터 2년 동안 인권운동사랑방 상임 활동가로써 8, 9회 인권영화제를 기획하셨습니다. 현재는 영상미디어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이 인터뷰는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제 3호에 이진영씨가 쓴 기사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칠레 전투>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 초의 칠레 정치 상황은?

 1973년 9월 11일, 칠레의 모네다 궁 안에서 카스트로가 선물했다는 총 한 자루를 움켜쥐고 있던 아옌데는 결국 죽음을 맞았다. 선거로 이룩한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이라는 평가와 그에 따르는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던 칠레 민중연합정부의 아옌데 정권은, 피노체트를 위시로 한 군부 쿠데타에 의해 결국 보이지 않는 역사 속으로 물러났다.

 '미국의 텃밭' 취급을 당하며 쿠데타, 군사 독재, 내전, 혁명과 반혁명 등이 되풀이된 실로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겪어 온 라틴아메리카는 정치, 경제적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지 오래지만, 폐허 위에서 체제 변혁을 시도하려는 민중들의 자율적인 풀뿌리 운동의 힘이 강력히 발산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70년 공산당, 사회당이 주축이 된 민중연합정부의 후보로 출범한 아옌데는 대통령 선거에서 1위를 획득하지만, 과반수를 획득하지 못하여 의회 지명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기독교 민주당과 손을 잡고 대통령직에 오른다. 이 불안정한 동거 속에서 사회주의로의 신념과 열망으로 충만했던 민중들이 내뿜는 열기와 정권을 전복하려는 보수 세력들이 조장하는 혼란이 뒤범벅되어 카메라에 기록된다.

 

<칠레전투>는 아옌데 민중연합 정권의 천일 역사를 치밀하고 분석적인 논리로 접근하고 있는데, 민중들이 거리에 모여 환호하는 모습, 반정부세력의 쿠데타 등의 장면에서는 특히 역동성이 돋보인다. 영화 촬영 과정을 소개한다면?

 1972년 칠레의 한복판, 파트리시오 구즈만과 다섯 명의 동료들은 16mm 카메라와 나그라녹음기 한 대, 코닥 흑백 필름만 갖춘 채 거리 거리를 누비며 칠레 역사를 채록한다. 그리고 부족한 조명시설 때문에 많은 장면들을 자연광 아래서 '생생하게' 찍어야 했다. 아옌데 정권 9개월 동안 숨가쁘게 진행된 칠레의 현대사는 6개월의 밀반출 끝에 쿠바로 옮겨져 6년의 편집과정 끝에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제2부 ‘쿠데타’의 마지막 장면은 쿠데타 이후 거리에서 촬영이 불가능해진 상태에서 임시 군사정부가 운영하던 TV방송을 통해 방영되었던 모네다궁의 폭격장면을 촬영하였다고 한다. 쓰러지는 모네다궁 사이로 아옌데의 육성이 흘러나오는 이 장면은 <칠레전투> 제2부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쓰라린 백미이다. 쿠데타가 발생하자 파트리시오 구즈만 감독은 체포되었고 제작팀은 변장을 하고 조심스레 하나둘씩 출국했다. 그들 중 카메라맨이었던 조! 르쥬 뮐러와 그의 부인 카르멘은 74년 체포되었는데 카르맨은 살인되었고, 조르쥬 뮐러는 현재까지 생사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오늘날 이 영화는 당시 칠레의 현장을 탁월하게 기록한 대작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데, 진영씨가 이 영화에 대해 짤막하게 표현한다면?

 이 영화는 연대기적인 편집 방식을 취하지 않고, 당시 칠레의 숨가쁜 지형을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인 범주로 나누어 정교한 구상 하에 촬영한 이후, 이를 "어느 하나의 사건에 대해 연관된 가능한 모든 질문들을 동시에 던지는 방식"으로 재구성하였다. "사회 변혁과 정치적 인식의 제고를 위한 핵심적 도구로서 다큐멘터리를 포용해 온 라틴아메리카 전통"의 질적 도약을 거둔 작품이면서, 광범위한 사람들과 호흡할 수 있으면서 정치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지평을 일구어낸 분석적인 영화이다. 뿐만 아니라 논리적이면서 서정적인 영상 언어로 심연을 울린다는 점도 <칠레전투>에서 빼놓을 수 없다.

 

 

[영화제] 인권영화제 10주년 회고작 상영작 확정

예스맨 The Yes men

- 단 올맨, 사라 프라이스, 크리스 스미스  미국/2003//83min/


아나의 아이들 Arna’s Children

- 줄리아노 멀 카미스, 다니엘 다니엘  이스라엘‧네덜란드/2003//84min/


도시 The City

- 데이비드 라이커  미국/1992//88min/


대지의 소금 Salt of the earth

- 허버트 비버만  미국/1954//94min/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볼리비아 일기 Ernesto Che Guevara : The Bolivian Diary

- 리차드 딘도  스위스/1996//94min/


착한 쿠르드 나쁜 쿠르드: 산 말고는 친구가 없다 Good Kurds bad Kurds: No friends but the mountains

- 케빈 멕키넌  미국/2000//79min/


에스코바의 자살골 Escobar's Own Goal

- 마이클 휴이트  아일랜드/1998//51min/


칠레전투1,2,3 Battle of Chile 1,2,3

- 파트리시오 구즈만  칠레/1975//96, 88, 78min/

  

지하의 민중 La Nacion Clandestina

- 보르헤 산히네스, 우카마우 집단  볼리비아/1989//125min/


애니메이션 모음

끝없는 강제 - 엘리 리/1997/6분 5초/컬러/미국

나눔 - 쟈넷 펄만/1997/7분 15초/컬러/캐나다

독방의 활력 - 닉 힐리고스/1997/5분 35초/컬러/캐나다

하늘나무 - 전승일/2003/16분/컬러/한국

누구세요- 이윤빈/2005/9분/ 한국

최우선권 -이슈 파텔/1981/9분 9초/캐나다

 [기획] 이웃영화제 스케치② - 장애인권영화제

- 인권영화제 자원 활동가, 서울장애인권영화제에 다녀오다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광화문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에서 네 번째 서울장애인권영화제가 진행되었다. 2003년부터 시작한 서울장애인권영화제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시혜와 동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인권으로서의 접근을 위해 만들어졌다. 다큐인 뿐 아니라 ‘장애인 영상 미디어 교육’을 받은 장애인이 카메라를 들고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 온 서울장애인권영화제는 비장애인 중심의 소비 위주 영화를 장애인 대중 주체의 건강한 생산적 문화로 바꾸고, 영화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이해를 높이고 인식 전환을 요구한다.

  올해 서울장애인권영화제에서도 장애인의 삶을 주제로 당사자가 직접 제작한 영상물을 토대로 영화제가 꾸며졌다. ‘장애를 대면하다.’, ‘장애인과 가족’, ‘장애인의 노동’, ‘장애인시설 민주화’, ‘나, 장애인’, ‘장애인과 성’, ‘장애인의 일상’, ‘장애인 차별 철폐를 외치다.’ 의 8가지 주제로 각각 1-3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그 중 인권영화제는 15일 저녁 ‘장애인과 성’을 주제로 한 류미례 감독의 2005년 작 다큐멘터리 영화 ‘성(性)스러운 이야기’를 보았다.

  일반적으로 정신지체인은 단지 지적 발달이 정체되었을 뿐인데도 아이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다 자란 성인도 무성의 존재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시작해 영화 ‘성(性)스러운 이야기’는 정신지체인 중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구별할 수 없는 이들부터 결혼해서 아기를 낳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의 성의식, 결혼과 출산에 대해 보여준다.     또한 영화는 성에 대해 정상인과 다를 바 없는 대다수의 3급 정신지체인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갖는 것을 방해하는 사회의 차별과 선입견, 정신지체인을 자녀로 둔 부모님들의 두려움에 대해 말한다. 즉, 비장애인들 사이에서도 쉬쉬하는 성 담론은 장애인 차별과 더불어 장애인 성 담론을 더욱 어렵게 했고, 성인이 된 자녀를 아직도 ‘아이’로 여기며 자녀에 대한 성교육의 필요성이나 그 방법론에 무지한 부모님들은 ‘장애의 제 2원인’ 이었던 ! 것이다. “엄마한테는 절대로 얘기하지 마세요.” 라고 당부하면서 장애인 성교육 강사에게 자신의 자위나 이성교제를 이야기했던 한 정신지체인을 보며 그들과 가장 가까이에 있으며 그들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부모들의 장애인 성 인식 전환과 교육이 절실하다는 생각을 했다.

  약 15분 동안의 영화가 막을 내린 후 감독과 출연진들과의 대화 시간을 통해  ‘성(性)스러운 이야기’가 본래 2005년 ‘장애인 성 심포지엄’을 시작하는 영상으로 제작되었음이 밝혀졌다. 그러한 매체의 특성 상 ‘15분 이하’라는 시간 제약과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의 성의식에 대한 충격적인 무지와 편견을 알리기 위한’ 확실한 의도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사실 영화로서의 완결성은 부족하고 다소 자극적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장애인, 특히 정신지체 장애인의 억압된 성과 그들의 성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솔직하게 보여주며 우리가 장애인의 성 담론을 형성하고 문제의식을 갖도록 유도한다.

  서울장애인권영화제는 단순히 영화만 보는 행사가 아니라 지난 1년간의 장애인 이슈와 현황을 되돌아보며 미래지향적인 담론을 만들어가는 의미 있는 시간이자 소중한 자리였다. 그러나 비장애인들, 특히 사회복지사나 영화 관계자, 대학 특수교육과 학생들이 아닌 일반인 관객들이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는 점에 아쉬움을 느끼며 다가올 우리 인권영화제의 적극적인 홍보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서울장애인권영화제와 인권영화제는 우리 모두가 보고, 듣고, 배우고, 느껴야 하는 ‘다 함께하는 축제’이기 때문이다. 

 

[상영작 리뷰] <우리는 정의파다>

이혜란/2006/105분/다큐

76년 ‘반나체 시위’와 78년 ‘똥물 사건’에 대해 들어보았다면, 영화 ‘우리는 정의파다’를 쉽게 넘길 수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위 사건들이 벌어졌던 동일방직 회사에서 여성노동자들의 의식이 깨고, 남성들에게 장악돼 있던 노동조합에서 최초로 여성지부장을 내고, 회사에서 민주노조에 가하는 폭력에 맞서다가 부당하게 해고당한 후 블랙리스트에 올라 ! 취업의 기회조차 박탈당했던 일들을, 현장에서 겪었던 당사자들의 인터뷰 형식을 통해 연대기 순으로 차분히 풀어놓았다.

단순히 1970년대 열악했던 노동현장과 그 투쟁을 담아내는 것을 넘어서 이 영화가 의미있는 이유는, ‘여자들도 할 수 있구나’라는 희망의 시초를 보여주고, 2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동일방직 복직 투쟁의 당위성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제 50이 다된 여성노동자들의 생생한 육성은, 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참동안 귓가에 머문다. 열여섯, 열일곱의 그녀들이 가졌던 뽀얗게 살 오른 새 순 같던 꿈, 그 꿈과 희망들이 무참하게 짓밟히던 그 때를 회상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다.

 “시집가서 듣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꼭 애들이 안 붙들려 갈라고 아우성치는 소리로 들리는 거야. 여름이 되면 밤마다 개구리 소리가 들리는데, 밤마다 미치겠는 거야.”

왜 그 시절의 야만이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는가가 궁금해진다면 꼭 보아야 할 영화.

 

인권영화제

(110-522)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2가 8-29 4층
Tel : +82-2-741-2407 | Fax : +82-2-741-5364 | e-
mail : 2006hrfilm@list.jinbo.net

울림을 만드는 사람들 : 마토, 권율, 강지희, 곽지현, 강경란, 박율우, 김서효정, 이소연

 

 

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當奈公何 "우리 인터넷, Daum" http://

진실화해위의 조사개시 결정에 대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의 입장
2006 제10회 인권영화제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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