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1/27(화)

IT 기술, 몰카로 전락? 
 
 
아름다운 미녀 고다이버(Godiva)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귀족
중 하나였던 머시아의 백작 레오프릭과 결혼했다. 그녀가 남편에게
주민들의 세금을 줄여달라고 요청하자 남편은 얼토당토않은 제안을
했다. “만일 당신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말을 타고
정오에 코벤트리 장터에 나타난다면 세금을 줄여주지.”

백작의 예상을 뒤엎고 다음날 그녀는 시장에 나타났다. 알몸에
백마를 타고. 그런데 놀랍게도 그리 붐비던 시장에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아연실색한 백작이 주민들에게 길가의 모든 창을 가리고
일체 통행하지 말도록 미리 엄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죽지 않기 위해 모든 주민은 백작의 명령에 따랐다. 그런데
킹스헤드 호텔 재단사 톰만 몰래 문틈으로 훔쳐보다 눈이 멀었다
한다. 여기서 “엿보는 톰”(peeping Tom)이라는 관용구가
생겼다는 속설이 있다. 관음증을 말할 때 흔히 인용하는 숙어의
유래가 이렇다.

그런데, 한국이 자랑하는 첨단 IT 기술이 관음증을 이용한 불법
서비스 확산에 일조하고 있다. 이런 서비스가 프라이버시와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뿐 아니라 모든 국민을 잠재적 피해자로 만들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 살게 하고 있다.

2003년 말 투명인간이란 소프트웨어 기술로 채팅 방에서 음란한
장면을 엿보게 하고 돈을 번 일이 발생했다. 그것도 대기업이.
이것은 사회적으로 무척 심각한 이슈였지만 유야무야 넘어가고
말았다.

채팅 방에 들어가면 모든 참여자 이름이 표시된다. 그런데 방
사람들에게 말 그대로 투명인간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투명인간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은 안심하고 은밀한
대화를 나누거나 영상을 교환하다 피해자가 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셈이다.

모텔이나 공중화장실 등에 설치되는 몰래카메라도 심각한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 카메라는 작아지고 선명해지는데다 무선통신 기술과
연계되고 있다. 당연히 숨긴 카메라를 찾기가 쉽지 않다. 정교한
제어기술은 카메라를 자유자재로 움직여 어느 각도에서나
촬영하도록 하기에 더 위협적이다. 이런 카메라로 인해 자칫하면
은밀한 생활이 노출될 뿐 아니라 심지어 자신도 모르게
상품화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처럼 심각한 문제에 대해 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까? 첫째, 피해자들을 피해자로 보지 않고 오히려 비난의
대상으로 보는 국민적 정서를 들 수 있다. 둘째, 각자가
조심하기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 때문이다. 이런 방관적이며
소극적인 태도가 문제해결의 걸림돌이 된다.

그럼 대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 피해를 예방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해 해당 부처는 필요한 법률의 정비, 윤리교육의
강화 등에 앞장서야 한다. 둘째, 시민들도 자신과 자녀가 언제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직시하고 이를 예방하는데 협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피해자를 피해자로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김형중 (강원대 전기전자정보통신공학부 교수)
 

(업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