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2/03(화)
[이슈]삼성그룹-정문술 회장 ‘밀월’깨졌다
삼성그룹과 정문술 미래산업 전 회장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그
동안 호의적이던 양측의 관계에 엇나가는 기운이 속속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양측이 본격적인 ‘관계 청산’
작업에 돌입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양측의
첨예한 대립에는 테스텍이라는 지문인식 시스템 전문업체가
도사리고 있다.
테스텍은 정 전 회장이 대주주로 있던 업체. 지난해 7월 정 전
회장이 카이스트에 지분을 기탁한 곳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테스텍은 그 동안 여러 차례 삼성과 사업을 진행해 왔다. 삼성그룹
내부 프로젝트에 여러번 동원됐을 뿐 아니라 굵직굵직한
프로젝트에도 컨소시엄을 구성해 나란히 참여해 왔다.
그런 테스텍과 삼성에 돌연 싸늘한 기운이 감도는 배경은
무엇일까. 삼성그룹은 최근 테스텍과 같이 진행해 오던 사업에서
테스텍을 대거 제외시켰다. 조폐공사가 시행하고 있는 주민등록증
위변조 방지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예.
조폐공사는 지난해 말 주민등록 위변조를 막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주민증 위변조 방지 프로젝트를 담당할 업체를 공모했다.
이 프로젝트는 사업 규모 면에서도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전자주민 사업으로 프로젝트가 확대될 경우 수익이 기하급수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상당수 업체가 군침을 삼켰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곳은 삼성SDS와
이재용 상무가 최대주주로 있는 서울통신기술. 테스텍은
서울통신기술에 지문인식 기기를 납품하는 식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과 테스텍의 ‘밀월 관계’는 이뿐만 아니다. 출입국 관리를
위해 외교통상부가 공모한 지문인식 사업에도 삼성SDS와
서울통신기술 컨소시엄이 최종 사업자로 낙찰됐다. 물론 이
사업에도 서울통신기술을 통해 테스텍이 사업에 참여하게 된다.
지난해 중순에는 삼성테스코, 삼성플라자, 삼성카드 등이 손잡고
지문으로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대형 할인마트에 설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삼성카드는 이를 위해 지문인증 솔루션 업체
선정을 위한 벤치마킹(BM) 테스트를 실시했고, 서울통신기술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이재용 친위부대’가 부활한 게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입찰에 참여했던 업체들을 중심으로 ‘편법
지원’ 의혹도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통신기술은 지문인식 업체가 아니다. 기업용 네트워크 사업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회사. 그나마 회사에서 벌어들이고 있는
매출의 상당수가 삼성그룹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삼성카드 입찰에 참여했다는 지문인식 업체의 한 관계자는
“삼성과 서울통신기술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비밀”이라며 “이번 입찰도 서울통신기술을
지원하기 위해 나머지 업체들을 들러리로 세운 게 아니냐는 의견이
업계에 팽배하다”고 귀띔했다.
이러한 잡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측은 테스텍이 낀 서울통신기술과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양측은 ‘삼성=서울통신기술=테스텍’의
관계를 청산했다. 삼성SDS는 최근 조폐공사 프로젝트에서 테스텍을
제외한 데 이어 삼성카드마저 테스텍과 서울통신기술이 맡기로
했던 사업을 전면 보류했다.
삼성의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얼마 전 테스텍을 사업에서
제외한 후 경쟁업체와 사업을 준비중”이라며 “이미 해당 업체와
사업에 필요한 의견조율을 마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삼성측은 이 같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곤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악의적인 소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SDS
김성수 선임은 “테스텍과 삼성의 관계에 금이 간 것은
사실”이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업무상 문제일 뿐 다른 일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김 선임에 따르면 삼성그룹과 테스텍의 ‘불화’는 삼성전자에서
촉발됐다.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삼성전자가 테스텍을
윤리 부적격 업체로 선정했다는 것이다. 삼성과 테스텍의 불화는
현재 그룹 전체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
그는 “삼성의 경우 부정행위로 적발된 업체의 정보를 계열사끼리
공유하는 예가 많다”며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굳이 그런
업체와 거래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인식이 팽배해져 있다”고
귀띔했다.
업계에서는 그러나 업무적인 문제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한 지문인식 업체의 고위 관계자는 “삼성측이
업무적인 문제를 이유로 들고 있지만 사실은 다른 속사정이
있다”며 “정문술 전 회장과 삼성 일가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내부 직원으로부터 들었다”고 밝혔다. 삼성과 테스텍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물론 삼성측은 지나치게 와전된 게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삼성전자측은 “테스텍측과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업상의
문제일 뿐”이라며 “정 전 회장과의 관계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삼성카드측도 “카드사 유동성 위기 때문에 사업을 잠시 보류하고
있는 것일 뿐 백지화된 것은 아니다”면서 “경영상 여력이 있을
때 진행하는 게 부가사업 아니겠느냐”며 관련 사실을 일축했다.
물론 삼성카드측의 주장대로 일시적으로 사업을 연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말을 덮어놓고 믿기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증권가에서는 그 동안 삼성과 정문술의 밀월 관계가
꾸준히 나돌았다. 요컨대 벤처기업가가 돈을 버는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기술을 통해 대박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는 기업에 투자해 막대한 이익을 남긴다. 정 전 회장의 경우
후자에 속한다는 게 소문의 요지.
업계 관계자는 “정 전 회장의 경우 시드머니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며 “때문에 증권가에서는 삼성이 막후에서 정 전
회장을 지원하고 있다는 소문이 여러 차례 나돌았다”고 말했다.
그룹구조조정본부에서 나서서 일을 처리하는 부분도 그렇다.
삼성은 현재 구조조정본부 차원에서 테스텍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삼성전자와 테스텍만의 관계라면 구조조정본부에서 일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석 esuk@joongang.co.kr
(I-Week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