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1/05(월)

‘대테러’ 지문채취는 인권 테러다 
 
 
그러지 않아도 원성이 높았던 미국 방문 절차에 고약한 내용이
하나 덧붙었다. 어제부터 미국 전역의 공항과 주요 항구에서
시행에 들어간 ‘방문·이민자 신분인식 기술’(유에스 비짓)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외국인 방문자의 생체정보를 통합 관리해
테러 용의자를 가려내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이 프로그램에
따라 방문자는 의무적으로 지문 채취와 사진 촬영에 응해야 한다.

이 프로그램은 한 해 2300만에 이를 외국인 방문자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간주하고 각자 고유한 생체정보 제공을 강요함으로써
이중으로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특히 통상 범죄자 등 특수한
경우에만 시행되는 강제적인 지문 채취는 불쾌함을 넘어 새로운
국제 갈등을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은 미국과
비자면제 협정을 맺은 유럽연합·일본·오스트레일리아 등
27개국과 캐나다를 제외하고 중동·아시아·아프리카·남미 등의
나라를 주된 대상으로 해 인종차별 냄새도 풍기고 있다. 미국에
맞서 브라질이 입국하는 미국인에 대해 지문을 채취하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주한 미국 대사관은 9·11 동시테러 이후 비자 발급 요건을 대폭
강화한 바 있다. 36개였던 비자 신청 양식의 질문 항목이 50가지
이상으로 늘어나고, 발급 거부율도 높아졌다. 추가된 항목에는
병역 주특기, 지난 10년 동안 방문했던 나라, 이전에 근무했던
직장, 현재 참여하고 있거나 참여한 사회단체 등 사생활 침해
우려가 다분한 것들이 포함됐다. 여기에다 대사관 쪽의 고압적이고
관료적인 태도까지 두드러져 한해 50만명 가까운 한국인 미국
방문자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미국은 인권침해 소지가 없고 다른 나라의 불편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문 절차 마련에 힘써야 할 것이다. 수많은 외국인이
불쾌감을 느낀다면 그 자체가 이미 안보 환경을 악화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한겨레신문)